3.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마음
퇴사하기 직전에 죽마고우를 만났었다.
일년정도를 쉬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취업준비를 하려는데 일년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걸 면접때 어떻게 풀어야 할지 걱정이라는거다. 중간에 취업도 했었고 취미생활도 나름 잘 하면서 지내온게 아무것도 안 한걸로는 보이진 않았는데, 알고보니 세상 사람들 다 나 빼고 열심히 살고있다는걸 안 후로는 그 걱정이 남일이 아니었다.
퇴사한지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위안해보지만, 아무것도 안했는데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다니 싶은거다.
회사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할때도 머릿속은 퇴사하면 뭣도 하고 뭐도 하고 진짜 다 할수 있을것만 같았는데, 정작 집에만 있으니까 마음이라는게 참 그렇다. 몸도 마음도 게을러진다. 그래서 마음이 불편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아무것도 안해도 괜찮아 내 마음건강이 최고야 하는 책들을 봐도 위로가 안되는건, 그 저자들도 결국엔 그 무기력을 이겨내고 뭐라도 한 결과물이 그 책인건데, 나는 그 무기력을 활용할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 한심한!!
마지막 점심을 다같이 먹으면서 이런얘기를 했다.
어쨌든 다시 취업을 해야하니까 “취준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걸 알아서 퇴사가 마냥 좋지만은 않네요” 라고 하니퇴사경력 선배님인 두 직원이 입을모아 소리쳤다.
“에이 무슨! 한달만이라도 푹 쉬어요!”
그렇지 못할 사정이 있기에 그럴수 없다는걸 나 스스로 알고있지만 그래도 그 말 한마디가 참 따뜻하더라.
사실 돈 문제만 아니면 일년은 쉬고싶은데 상황이 어떻게 내맘대로 흘러갈수 있을까. 그래서 단기로 할수있는 알바를 찾아봤다. 간장 관련한 좌담회 알바를 신청했다. 연락은 안올것 같지만 뭐라도 행동했다는 것에 의의를 둬본다. 이렇게 죄책감 하나 덜기.
그리고 회사다니면서 정말정말 하고싶었던 것중에 하나가 바로 독서였다. 독서는 아무때나 할수 있는것이지만 달콤한 독서는 아무때나 할수 없다. 회사다니면서 읽는 책은 즐겁가 않다고! 그렇게 쌓여가는 책, 아껴읽으려던 책이 뭐였는지 이젠 기억도 안 난다. 이제 슬슬 한 두권씩 가볍게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 그렇게 재밌을수가 없다. 너무 달콤하다.
아아 독서의 맛!
초지일관 벌거숭이 어쩌구, 오늘의 인생 1편..
만화에세이지만 이것도 독서라고 하면 할수 있지!
넷플릭스도 돈 나가는데 백수가 무슨 정기결제람? 싶었는데 애플뮤직은 해지했지만 넷플릭스는 해지하지 않았다. 방구석문화생활이라도 해야지 싶어서 잔잔한 컨텐츠를 찾아보고 있다. 빵과 스프와 고양이 뭐시기였는데, 요즘 일본 특유의 잔잔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땡긴다. 힐링이 필요한것이다.